상담철학

레비나스의 얼굴의 현상학

저희들은 유학 시절에 많은 시간을 타자와 주체의 관계의 근원을 다룬 레비나스의 윤리철학과 씨름하며 보냈습니다. 특히 김수정 박사의 학위논문 주제는 레비나스의 얼굴의 현상학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여 인간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이었습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는 근본적으로 사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존재입니다. 그는 나에 의해 파악되는 지식의 대상도 아니고, 내가 그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피교육적 대상도 아니며, 또 나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고 나와 동등한 인간적 권리를 가진 "또 다른 나“라는 개념으로도 완전히 설명될 수 없습니다. 타자란 이러한 인식을 넘어서 존재합니다. 레비나스는 그를 절대적인 낯섦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타자는 어떤 종류의 의미도 넘어서는, 그 어떤 문맥에도 속하지 않은 얼굴로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그 얼굴은 모든 의미와 문맥 너머에서 "당신은 나에게 폭력을 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이러한 근원적인 윤리적 요청에 주체가 응답함을 통해 형성되는 상호주관적 인간관계를 "얼굴 대 얼굴의 만남“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얼굴 대 얼굴의 만남이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의 윤리적 정당성을 담아내는 근원적 전제라고 규정합니다.

이와 같은 타자에 대한 철학적 견해가 심리상담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레비나스의 윤리철학이 로저스의 상담이론과 만나면서 저희들은 타자가 타인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또 다른 타자는 존재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감정, 감각, 생각, 기억, 환상 따위의 담지자로서의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기 자신은 동일성과 타자성이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함께 어우러져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상담에서 중심이 되는 타자는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입니다.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관계를 통해서만, 다시 말해 "얼굴 대 얼굴의 만남"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기 자신과 일치할 수 있으며, 나아가 타인과도 진정한 인간관계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타자성을 무시 혹은 부정하는, 제거하는, 또는 변화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타자성에 대처하여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타자성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 타자성이 오히려 우리를 지배하기도 하며, 타자성과 심각한 불화와 갈등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감내하기 힘든 불편감을 느끼게 하며 정신적이거나 신체적인 문제를 유발합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자기 자신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온전히 수용하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 얼굴 대 얼굴로 만나는 것이 심리상담의 이상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